2008년 04월 18일
[펌] 동남아의 힘 : 미시적 영역 - 신윤환 교수
동남아의 힘: 미시적 영역
신윤환(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남포럼 운영위원)
특정의 나라나 지역의 힘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국력이나 국부 또는 그 합과 같이 거시적인 차원이나 영역을 다루어야 한다. 거시적 수준에서 힘은 국제관계에서 교섭력과 국민총생산이나 국민소득 따위로 가늠이 되니 정확히 계산해 보지 않아도 동남아의 힘은 신통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힘이 언젠가는 커질지도 모를 가능성, 즉 잠재력까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흔히들 동남아는 잠재력이 크다고들 한다. 이 지역이 가진 풍부한 자원이나 생산요소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동남아의 역사를 훑어보면 꿸 구슬은 많은데 스스로 꿰지 못하다(않다?) 보니, 안팎으로 ‘도둑놈들’만 끓었다. 서구 식민주의자, 외래 상인, 이들과 결탁했던 토착 권력이 그들이다. 토지, 노동, 자본 따위의 물적, 인적 자원이나 잠재적인 힘은 다음에 차근차근 계산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미시적인’ 차원이나 영역에서 동남아의 힘이 무엇인지를 따져 보려 한다.
개개인의 힘이나 능력의 합이 바로 집단이나 국가의 그것으로 전환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른바 합성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유태인을 보노라면 개개인은 모두 총명하고 지혜롭고 부유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강대국이라 부를 수는 없고, 대다수 유태 민족은 이리저리 떠돌고 있지 않은가. 동남아의 화인, 화교들 개개인은 대부분 잘 사는데, 그 전체가 어떤 집단적인 정체성을 갖거나 조직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도 그러하다. 그러나 물적, 인적 자원과 마찬가지로 미시적인 영역의 힘도 잠재력의 중요한 요소이거나, 아니면 이들과 달리 미시적인 것은 거시적인 것과 다른 ‘차원’의 힘을 구성하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영국식민주의자들이 버마의 전통국가를 무너뜨리고 경제를 착취하였지만, 버마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까지 뺏거나 굴복시키지는 못했던 게 아닌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식민지”에도 그늘은 크고 넓었다. 모든 제국주의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영방식, 즉 간접통치는 미시적 영역의 경계 밖에 머물러 있었다. 동남아에서 버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다스린 영국도 그러했지만 인도네시아라는 광활한 식민지를 건설했던 네덜란드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나는 합성의 오류, 생태학적 오류를 들먹이면서 개인과 집단, 시민과 국가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논리가 제국주의적 지배, 식민주의적 착취, 그리고 최근에는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 성원, 시민, 국민이 우수하고 열심히 일하는 나라는 집단, 조직, 사회, 국가도 그럴 수밖에 없고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전체적인 체계는 잘못된 것이므로 개혁되거나 타도되어야 한다. 일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하고 근면하게 사는데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것은 그 집단의 규범이나 국가의 제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쳐져야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요, 시민이 아니라 국가인 것이다. 개개인들이 모두 훌륭하면 그 나라도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잘된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가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 같다. 동남아의 힘을 말할 때 내가 먼저 생각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개개인들이 가지거나 보여주는 미시적인 힘들이다. 다만 지금까지 따져 본 바는 이 힘들이 잠재적인 것인지 실제적인 것인지는 인식론적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힘은 내가, 아니 요즈음 유행하는 용어로 “[국제적인] 감수성이 있는” 어떤 한국인들도, 동남아인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부치는 힘’이다. 그 동남아인들이 돈을 많이 가진 것도, 교육의 많이 받아 똑똑한 것도, 강대국민으로서 든든한 빽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내가 힘이 부친다고 느끼는,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그런 힘이다. 앞선 글에서 이미 고백했듯이 아직도 적절한 개념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일종의 ‘끈질김’과 ‘여유’ 양자 모두를 섞어 놓은 것 같으면서, 딱히 그것으로나 그것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힘이다.
그러면서 그 힘은 일반적으로 강자나 부자가 보이는 그런 힘과 분명 다른 것이다. “너희들은 돈, 권력, 지위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더 센 ‘이것’이 있다”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흡사 노름판에서 밑천이 많아 언젠가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그런 여유와 배짱 같은 것인데, 그 밑천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또한 밑천이 많아도 그걸 내보이거나 자랑하지 않으며, 여유를 부려도 힘센 자들이 거들먹거리는 그런 태도와 다르다.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팽팽한 긴장 속에 지속되는 그런 끈질김도 아니다. 물론 개념적으로 관련이 있을지는 몰라도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인 그런 힘은 아니다.
나에게 수많은 실례가 있다. 이 실례들을 곱씹다 보면 딱 들어맞는 개념이 떠 오를지도 모르겠다. 다음 호부터 내 이야기를 풀기로 하고, 오늘은 동남아를 처음 접하게 된 어느 인류학자의 인상적인 만남을 일단 들어보자.
전경수 교수는 베트남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 그곳을 여행하였는데, 한때 사이공으로 불렸던 호찌민 시에서 겪은 일을 <베트남일기>에서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씨클로(cyclo) 운전수인데, 전교수는 이 주인공을 호텔 입구에서 만나 호객을 당하게 되지만 쉽지 않게 거절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끈질기게 전교수 뒤를 따라 붙으며 자신의 승객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그 끈질김에 지친 전교수는 결국 “도망”을 하게 되고, 그 운전수를 따돌리기 위해 시장 통속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골목길에서 달리기도 해 보지만, 복잡한 곳을 벗어나 한가한 곳에만 이르면 이 운전수가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는 갖은 꾀를 내어 이 운전수를 따 돌리고 이제는 되었거니 하고 호텔 커피숍에 앉아 여유롭게 찻잔을 들며 고개를 들어보니, 이 운전수가 호텔 창 밖에 서서 유령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순간 전교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났다고 했다. 이렇게 숨바꼭질하며 도망 다닌 것이 무려 한나절이었지만, 결국 패배하여 이 운전수의 전용 손님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그의 책에서 계속 이어진다. 전교수는 베트남이 중국, 프랑스, 미국을 물리친 것이 바로 이 끈질김이나 끈기 때문이었다고 암시하지만, 동남아의 힘은 단순히 끈질김 하나로만 해석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이고, 교묘하며, 세련된 측면을 갖고 있다. 이제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 by | 2008/04/18 08:59 | 동남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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