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16일
베이징당국의 시각으로 본 달라이라마
北京眼中的達賴喇嘛
탄웨이얼(譚衛兒)
亞洲週刊 22卷 28期, 2008년 7월 20일
라바핑춰는, 베이징당국의 시각에서 볼 때 달라이라마의 입장은 줄곧 흔들렸다고 하였다. 베이징당국은 해외로 망명한 티베트인들과 망명정부의 내부의 결속력이 결코 철판처럼 단단하지는 않지만 달라이라마가 그들에 대하여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베이징당국은 또한 경제가 티베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묘약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어떤 인물인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평화의 사자? 위대한 종교지도자? …… 이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흔히 달라이라마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나 베이징정부가 달라이라마에 대해 내리고 있는 정의는 단 하나. 즉 ‘변덕스런 사람’이다.
티베트 독립분자가 해외에서 올림픽성화봉송을 방해한 이후, 베이징당국은 달라이라마에 대하여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왜냐하면 베이징당국의 눈에는 달라이라마의 입장이 줄곧 흔들렸기 때문이다. 올림픽 성화가 봉송되면서 해외에서 여러 차례 습격을 받았을 때 달라이라마는 올림픽 거부운동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표명하였다. 그러나 중국 영도자가 달라이라마에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이러한 행동을 중단해줄 것을 요구하였을 때, 그는 티베트청년회의 과격한 행동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5월 초에 달라이라마의 대표는 중국공산당중앙통일전선부(統一戰線部, 이하 중공중앙통전부로 약칭)의 두 명의 고위층과 회담을 하였으며, 또 6월 중에 다시 회담을 하기로 논의하였다. 쓰촨성(四川省) 원촨(汶川)의 대지진 후에 달라이라마는 재난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는 유럽방문 때, 중국정부가 지진이 발생하였을 때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표명한 것은 진보라고 하였으며 또 티베트가 중국에 속하여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또다시 만약 양측의 회담이 결렬된다면 티베트에서 ‘심각한 폭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음을 언급하였다. …… 6월 5일에 신화사(新華社)는 최근 티베트에서 삼종(三宗) 폭탄사건을 적발하여 16 명의 승려들을 체포하였다고 발표하고 달라이라마를 그 수괴로 지목하였다. 관영 신화사가 달라이라마를 ‘수괴’로 지목한 것은 베이징당국이 그에 대하여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달라이라마의 개인대표가 베이징당국과 새로운 회담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베이징당국의 시각에서 보면 티베트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는가의 관건은 아마도 달라이라마 본인이 진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여 급진적 티베트 독립분자들의 행동을 자제시키기를 원하는가에 달려있다. 중공중앙통전부 산하 중국티베트학연구센터[中國藏學研究中心]의 라바핑춰(拉巴平措) 총간사는 중국공산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의 대티베트 방침이 근 20년 동안 일관성을 유지하였음을 언급하면서, 달라이라마의 ‘입장은 변화무쌍하였다’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베이징당국은 8월에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달라이라마가 진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여 티베트 독립분자들이 더 이상 소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라바핑춰가 총간사를 맡고 있는 중국티베트학연구센터는 1986년에 설립되었으며 정부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권위있는 티베트연구기관이다. 그곳에는 140여 명의 연구원이 있으며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라바핑춰처럼 티베트에서 성장한 티베트인들이다. 80년대에 후진타오가 티베트자치구 당위서기(黨委書記)를 맡고 있을 때 라바핑춰도 티베트자치구정부에서 일을 하였으며 자치구 선전부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당시 자치구정부는 후진타오의 지도하에 경제개발을 최우선과제로 삼았다고 회상하였다. 원래 이 정책은 1989년의 티베트 소요사태가 발단이 되어 만들어졌다. 당시 티베트자치구 당위서기였던 후진타오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여 매우 신속하게 티베트 정세를 안정시켰다. 당시 후진타오 휘하에서 일을 하던 라바핑춰는 후진타오의 과단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소요를 평정한 뒤에 후진타오는 베이징으로 가서 당시의 총서기였던 장쩌민(江澤民)과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에 티베트 정세를 설명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정치국상무위원회는 하루 종일 티베트 상황과 이후의 대책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후진타오는 바로 그 상무위원회에서 티베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경제개발 위주의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안하여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의 찬성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라바핑춰는, 티베트 문제에 있어서 중앙이 줄곧 견지한 것은 ‘하나의 중심 - 즉 경제를 중심을 삼음, 두 가지 대사(大事) - 즉 경제발전과 사회안정, 및 세 가지 확보 - 즉 신속한 경제개발의 확보, 사회안정의 확보, 인민생활수준의 부단한 제고의 확보’였다고 한다. 라바핑춰는, 이러한 경제위주의 티베트정책이 일단 확정된 뒤에는, 중앙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것 외에도 중앙은 각 성(省)과 시(市)에 티베트에 대하여 지원을 하도록 요구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90년대부터 티베트의 매년 경제성장률은 계속 두 자리 수 이상을 유지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티베트 경제가 부단히 개선되는 상황 하에서 2008년인 현재에 이르러서도 왜 티베트에서 여전히 소요사태가 발생하는가? 라바핑춰는 “우리들의 정책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집단이 올해가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임을 이용하여 소요를 일으킨 것이 소요발생의 주요원인이다.”라고 하였다. 티베트에서 성장하여 오랫동안 티베트연구에 종사해 온 라바핑춰는, ‘베이징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달라이라마를 따라 인도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특권을 향유하던 티베트 귀족이었다. 그들은 티베트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베이징당국이 티베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혁에 대하여 원망과 분노를 가지는 것도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라고 하였다.
베이징당국과 달라이라마는 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가?
라바핑춰는, 달라이라마는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그 자신도 티베트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그의 가족들이 줄곧 중앙정부와 접촉하였음을 중앙정부도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달라이라마의 형이 항상 중국을 방문하는 것 말고도, 그의 조카가 여러 해 동안 계속 홍콩에 거주하면서 여러 차례 내지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베이징당국은 달라이라마가 최근 중국의 커다란 변화와 경제발전 및 티베트 경제상황의 개선과 사회정세 등에 대하여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달라이라마의 대표가 베이징당국과 접촉을 주고받으면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달라이라마는 항상 변덕스럽다.”라고 라바핑춰는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장 먼저 달라이라마와 접촉을 시도한 사람은 덩샤오핑(鄧小平)이다. 문혁(文革)이 끝난 뒤에 덩샤오핑이 정국을 주도하였는데, 당시의 달라이라마는 문혁시기 베이징당국의 티베트정책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하였다. 덩샤오핑은 티베트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달라이라마가 ‘귀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1989년의 64사건 이후에 달라이라마는 ‘불안정한 정부와 접촉하여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면서 베이징당국과의 접촉을 중단하였다. 뒤에 실질적인 원인 때문에 그의 대표가 다시 베이징과 접촉을 가졌다. 2002년부터 금년 ‘314’사건 전까지 양측은 전후하여 6차례 접촉하였으나 한 가지도 의견의 접근을 보지 못하였다. 이는 바로 달라이라마의 입장이 항상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의 대티베트구(大藏區) 요구는 베이징당국의 입장에서는 독립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베이징당국이 늘 ‘변덕스럽다’고 하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를 베이징당국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라바핑춰는, 베이징당국도 달라이라마가 확실히 고령이며 그도 일부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라바핑춰는, 달라이라마가 항상 자신은 급진적 티베트청년회를 통제할 수 없다고 하는 말에 대하여, 베이징당국도 해외로 망명한 티베트인들과 망명정부의 내부의 결속력이 결코 철판처럼 단단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듣지 않지만, 어쨌든 달라이라마는 그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베이징당국은 지금까지 티베트 독립분자들이 올림픽을 방해하거나 소요를 일으키는 것을 비난할 때 ‘달라이라마 집단’이라고 지적하였다.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정의는 달라이라마 본인을 특별히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망명정부와 기타 티베트 독립운동조직과 개인을 일반적으로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당국은 달라이라마가 원하기만 한다면 결코 그가 말하는 것처럼 저들 급진적인 티베트인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줄곧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베이징당국은 달라이라마 본인이 티베트에서의 어떠한 폭력행위에도 반대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표명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달라이라마가 이러한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오히려 달라이라마는 만약 양측의 회담이 결렬된다면 폭동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리하여 베이징당국은 달라이라마를 매우 의심하게 되었다.
달라이라마의 대표는 4월 말에 선전(深圳)에서 중공중앙통전부 소속 두 명의 관리와 회담을 가졌다. 라바핑취는, 이때의 회담은 좋은 출발이었다고 말하였다. 올림픽이 목전에 닥쳤으므로 아무래도 양측이 접촉하는 것이 접촉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 왜냐하면 티베트 독립분자들이 올림픽을 방해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중앙은 티베트사회의 안정을 고려하여 달라이라마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티베트 독립분자들이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시도나 활동을 중단시켜 주도록 요구하였다. 달라이라마가 이 점만 보장해준다면 그 다음 단계로 담판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고려할 것이다.
1981년에 후야오방(胡耀邦)이 티베트 문제 해결을 위한 5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독립을 포기하기만 한다면 그가 귀국하는 것을 환영하며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등의 직함을 맡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베이징은 여전히 달라이라마의 귀국을 환영하고 있는가? 라바핑춰는 이에 대한 즉답을 피하였다. 다만 티베트독립문제는 설사 달라이라마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냉전시기에 국제적으로 티베트는 하나의 독립된 의제였으나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계정세 하에서는 상황이 다르다고 하였다. 그는 “최근 중국의 급속한 발전에 대하여 세계의 일부 사람들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 티베트문제는 국제정세와 천만갈래 얽혀있기 때문에 이번 티베트의 소요사태가 급작스럽게 발생한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큰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티베트의 경제가 100% 좋아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소요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티베트문화 보존사업
사실 베이징은, 티베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유일한 묘약이 아님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라바핑춰는, 그가 총간사를 맡고 있는 중국티베트학연구센터가 설립된 198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티베트문화 보존사업을 추진하여 왔다고 하였다. 그는, 올해 중앙정부는 수천만 위안의 자금을 들여서 230부의 대장경을 출간하고 또 동시에 장약대전(藏藥大全)을 정리할 것이라고 하였다. 라바핑춰는 또, 칭장철도(青藏鐵路) 개통 2주년과 관련하여 정부가 티베트여행산업의 발전을 촉진함과 동시에 티베트의 자연생태와 문화의 보호 등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완전히 새로워진 국제 및 국내정세에 직면하여 베이징당국이 마련한 것은 경제를 위주로 하는 전방위 대티베트정책이다.
# by | 2008/09/16 10:36 | 동아시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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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나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티벳 사람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우리의 다정한 이웃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